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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크를 먹어야 해.”

 

 

그건 어느 눈이 내리던 겨울의 일이었다. 코타츠 안에서 흐물흐물하게 떡이 되어가던 소녀가 난데없이 벌떡 일어나 외쳤다.

보통 큰방에는 소녀 외에도 여럿이 늘 상주해 있었다. 기본적으로 곁을 따르는 근시 한 명, 그 근시의 부속 여러 명. 가령 마에다 토시로가 근시라면 단도들이 옆에서 같이 놀았고, 카슈 키요미츠가 근시라면 신센구미가 따랐다.

그런데 그 날은 희한하게도 근시인 카슈 키요미츠 외에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혼자 주인을 상대하던 카슈는 그게 뭔데? 하고 건성으로 답했다.

 

 

“하얗고 달콤하고 위에 과일이 가득 올라간 음식이야.”

“앙미츠…?”

“아니아니, 좀 달라. 이건 밀가루로 만들었으니까.”

“헤에─ ……그래서?”

“가자.”

“???”

 

 

이동은 눈 깜짝할 새였다.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카슈가 눈을 한 번 깜빡이자 배경이 바뀌어 있었다. 방법은 소녀와 맞잡은 손. 영력을 아끼지 않는 소녀의 힘이 두 사람을 혼마루에서 현세로 옮겨다 놓은 것이다.

갑자기 따뜻한 방 안에서 찬바람 부는 밖으로 던져진 카슈는 어처구니를 잃었다. 겨울이 되자마자 지나치게 생기가 돌긴 했지만 설마 이럴 줄이야. 이건 아니지 않아?

 

 

“……아하! 크리스마스였구나. 그래서 그런 거였어.”

 

 

애석하게도 카슈가 얼이 나갔거나 말거나 소녀는 안중에도 없었다. 무언가 납득한 듯 혼자 손뼉을 치며 일류미네이션이 가득한 도시를 눈에 가득 담은 소녀는 곧장 카슈의 손을 잡아끌었다.

 

 

“주, 주인. 잠깐만~”

“흐, 흐흥~ 어디로 갈까나.”

“하아… 정말. 어쩔 수 없네.”

 

 

휘둘린 건 익숙했다. 카슈는 포기하고 소녀의 손을 맞잡으며 발걸음의 보조를 맞췄다.

 

 

“쿠츙.”

“주인 추워? 하긴. 그런 차림이니.”

 

 

번화가로 보이는 길을 걷던 소녀가 재채기를 한다. 겨울용으로 따뜻하다고 하는 판다 망토를 걸치긴 했지만 소녀의 차림은 많이 얇았다. 카슈는 얼른 제 목도리를 풀어 소녀에게 감아주었다. 카슈가 춥잖아. 소녀의 물음에 카슈가 코웃음을 췬다.

 

 

“검은 추위 같은 거 안… 에취.”

“말 끝나기가 무섭기는. 아, 다 왔어. 여기야. 여기.”

 

 

다행히 소녀가 목도리를 다시 카슈에게 돌려줄 것 없이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두 사람이 선 곳은 붉은색의 벽돌로 지은 예쁜 외관의 가게였다. 가게의 진열대에는 소녀가 말하던 하얀 것 위에 과일이 가득한 케이크란 것은 물론, 나무토막 모양(소녀는 부시드 노엘이라고 엄청 비싼 거란 설명을 덧붙였다) 집 모양, 흰 수염의 할아버지 장식이 올라간 것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두 사람이 들어가자 시선이 잠깐 모였다 흩어졌다. 복장이 기묘하니 그럴 만 했다. 카슈도 소녀도 전혀 의식하지 못했지만.

 

 

“카슈는 뭐 먹을래?”

“으-음, 주인이 적당히 골라줘.”

 

 

소년의 호칭에 사람들이 다시 시선을 가득 쏘았지만 이 또한 카슈와 소녀는 까마득하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현세와는 동떨어진 곳에서 지내다 보니 타인의 시선 같은 건 그들에게 닿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그보다 주인 돈은 있어? 카슈의 현실적인 고민에 소녀는 응. 하고 태연하게 지폐를 꺼냈다. 도라에몽과 같은 솜씨다. 저건 어디서 나온 거지? 하고 일순 의문을 품던 카슈는 곧 주인이라면 가능하겠거니 납득했다.

두 사람은 소녀의 주문에 따라 새하얀 생크림에 덮여 위에는 딸기와 청포도와 키위 등이 얹어진 과일생크림케이크를 두 조각 나란히 시켰다. 그 옆에는 마시멜로우를 얹은 따뜻한 코코아도 준비되어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아. ……아, 이거 맛있어!”

“그치?”

 

 

포크로 콕콕 찌르다가 한 입 잘라먹은 카슈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그 감촉에 깜짝 놀라 소녀를 올려다보았다. 겉보기엔 무우를 간 것 같기도 한 모양새지만 놀라울 정도로 달고 부드럽고 맛있었다. 위에 얹어진 과일도 시고 달아 맛있었지만 생크림과 스펀지의 조합은 그것보다 훨씬 더 각별한 맛이 났다.

저절로 입 꼬리가 올라가는 카슈를 보고 소녀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홀라당 한 조각을 다 먹어버렸다.

두 사람은 고민할 것도 없이 한 조각씩 더 시켰다. 주인의 변덕에 한숨을 내쉬던 기억은 이미 카슈에게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그런데 갑자기 웬 케이크였던 거야?”

“으-응. 잘 모르겠는데, 오늘이 케이크를 먹는 날이었던 게 떠올랐어. 그치만 카센이나 밋쨩은 케이크 만들 줄 모르잖아? 그래서 나왔어.”

“아하.”

 

 

가게 안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캐롤이 흐르고 있었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징글벨~ 징글벨~ 산타 할아버지가~ 그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소녀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문득 그의 머릿속에 그들과 보내기 전의 소녀가 스쳤다. 작년의 소녀였다면 누구와 이곳에 왔을까? 소중한 누군가가 곁에 있던 게 아닐까? 과연 지금은──

 

 

“카슈랑 와서 행복하다. 헤헤.”

 

 

툭 튀어나온 소녀의 말에 카슈는 흠칫 놀랐다. 마치 제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한 말이었다. 놀라는 카슈를 보고 소녀가 카슈? 하고 부른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도 똑같다. 그도 주인이 즐거우면 충분했다.

2조각째로도 만족하지 못해 결국 둘이서 작은 케이크 한 판을 다 먹어치운 꼴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만족할 만큼 먹은 소녀는 돌아가서 모두와 먹을 케이크도 사가려고 했지만, 오늘 같은 날 갑자기 약 50인분에 달아는 케이크를 구하는 건 무리였다. 하는 수 없이 요리책으로 타협한 소녀는(만드는 건 카센 카네사다와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의 몫이 될 것이다) 카슈의 손을 잡았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아, 카슈.”

“응?”

“생크림 묻었잖아.”

 

 

낼름하는 감촉이 볼에 닿았다 떨어진다. 화들짝 놀라는 카슈를 모르고 소녀는 개구지게 웃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카슈.”

“…메리 크리스마스, 주인.”

 

 

자신이 입에 담은 의미도 모르는 채 카슈는 주인을 따라 했다. 의미는 모르겠지만 왠지 신성한 느낌이 들었다.

신의 축복이 그녀에게 함께하길. 그렇게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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