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사니와는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하얀 눈이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고 눈을 반짝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바람이 꽤 쌀쌀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마루 아래에서는 아와타구치의 단도들이, 다른 도파의 단도들에 협차도 몇 끌어당겨 온 마당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자그마한 발치를 마찬가지로 자그마한 호랑이나 말을 하는 여우 따위가 바삐 따라붙었다.
혼마루에 내리는 첫눈 덕분이 밖이 소란스러운 사이, 헤시키리 하세베는 집무실에 바르게 앉아 서류와 씨름을 했다. 붓을 단정히 긋는 동작에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따금씩 그는 아직도 바깥 마루에 앉은 사니와가 걱정되기라도 하는지 장지문 너머를 눈여겨보았으나, 사니와의 그림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따금씩 단도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지 손이 하늘하늘 움직이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결국 사니와는 하세베가 마지막 서류에 마침표를 써 넣을 때까지 마루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눈 내리는 모습을 구경했다. 하세베가 챙겨 입힌 겉옷에 장갑까지 그대로 착용한 채였다. 하세베가 나올 때 즈음엔 이미 눈은 거의 그치고 말아, 눈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 같은 작은 알갱이가 한두 개쯤 위에서 아래로 흩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사니와는 허공에 희뿌연 입김을 후, 불더니 ‘아쉽네.’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오늘 같은 날은 조금 더 여유를 부려도 좋았잖아?”
“일은 미뤄두기보다는 제때 하는 게 좋습니다.”
교과서를 빼다 박은 대답을 들은 사니와가 입을 살살 올려 웃었다. 하세베는 정중하지만 약간은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사니와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니와는, 청보랏빛 눈동자를 잠시 들여다보다가 후우, 하고 따뜻한 입김을 불었다. 차가운 공기에 맞닿은 입김이 금세 하얗게 변해 갈래갈래 흩어진다.
“하세베야.”
“예, 주군.”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았다.”
“크리스마스…성탄절 말입니까?”
의아한 듯 묻는 목소리에 대답하듯 사니와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니와는 소매 끝에 묻었던 눈 녹은 물방울을 툭툭 털어내고, 장갑을 벗고, 겉옷을 벗어 팔에 걸쳤다. 하세베가 걸쳐주었던 것은 검은 빛깔에 흰 자수가 놓인 하오리였지만, 그 아래 숨어있던 것은 셔츠에 청바지, 카디건으로 구성된 완벽한 현대식 복장이었다. 사니와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하세베의 손을 잡아끌며 유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우리, 데이트 가자!”
“예에?”
* * *
크리스마스는 아직 조금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온통 크리스마스 장식과 선물 등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다. 커다란 트리가 서 있는 곳도 있는가 하면, 크리스마스 리스를 걸어둔 곳도 있었고, 산타와 루돌프, 커다란 선물 상자 모형에, 크리스마스 기획 상품이라는 것들도 있다. 게다가 가로수에는 온통 크리스마스를 연상하게 하는 꼬마전구가 줄줄이 감겨 빛을 반짝거리고 있으니 지금이 마치 크리스마스이기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거리에는 밤의 손짓에 유혹당한 수많은 사람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번화한 시내의 상점가인 만큼, 그리고 주말인 만큼 밤을 즐기려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넘쳐났다. 사람들은 가게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밖에 나온 직원의 손짓에 이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선물로 보이는 것들을 한가득 사서 나오기도 하고, 저기로부터 와서 다른 곳으로 가버리기도 했다. 온갖 것들이 넘쳐나는 거리는 거의 발 디딜 틈도 없었다.
그런 시내에서, 사니와와 하세베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우선 혼마루에서 입는 복장이 아니라 제대로 현세의 복장을 하고 나온 그들은 지금은 꽤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 사니와는 항상 걸치고 다니는 하오리 대신 평범한 재킷을 입고 목도리를 둘렀으며, 하세베는 신부복과 영대 대신 긴 코트를 걸친 채였다. 물론 로만 칼라에 핀턱이 여러 줄 들어간 셔츠 대신 평범한 셔츠를 안에 입고 있었다.
“주…아니, 음…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말 좀 편하게 하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런….”
여전히 말투가 딱딱한 하세베를 보며, 사니와는 ‘다음번엔 미츠타다를 데리고 나와 볼까.’ 하는, 하세베가 매우 싫어할 것 같은 생각 따위를 했다. 그리고는 눈앞의 커다란 건물을 보라는 듯 하세베의 팔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사니와의 생각을 알 리 없는 하세베는 검은 밤하늘을 우습게 여기는 듯 환하게 조명을 밝히며 서있는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화려한 조명이 건물을 비추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건물의 입구로 들락거리는 중이었다.
“여긴….”
“백화점. 들어가자, 살 게 많아.”
“사다니요?”
“크리스마스잖아?”
사니와는 그 말만을 하고 곧바로 백화점이라고 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기 때문에, 하세베는 바쁘게 그 뒤를 좇아야만 했다. 평범한 복장의 사니와는 금세 사람들 사이에 섞여버렸지만 제 주인을 찾는 일은 도검남사에게 있어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금세 따라붙은 하세베를 보고 사니와가 경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백화점은 지상 10층까지인 것 같았다. 하세베는 바쁘게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사는 사니와의 뒤를 따라다니며 짐을 들어주려 했지만, 사니와는 손에 가득 들 만큼의 물건이 생기면 곧바로 혼마루에 배달을 시켜버렸기 때문에 실제로 하세베의 손에 들린 짐의 양은 백화점에서 쇼핑을 잔뜩 한 사람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매우 적었다. 대신 그는 건물의 충분하고도 남을 난방 덕분에 더워하는 사니와의 겉옷을 받아들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 트리와 각종 장식, 요리 재료와 군것질거리, 남사들에게 줄 선물을 샀다. 모두 사니와가 혼자 고른 것들이고 하세베는 단 한 번도 첨언하지를 않았지만, 선물의 개수가 오십 개인 것으로 보아 사니와는 자신의 것만 빼고 모두의 선물을 다 산 셈이 되었다. 셈이 틀린 것이 아니라, 개목걸이를 사면서 ‘이것은 콘노스케….’라고 사니와가 중얼거렸기 때문에 틀림없었다.
“음, 좋아. 얼추 다 샀지….”
“그렇다면, 이제….”
“…11층이야!”
“예?”
하세베는 가만히 눈을 껌벅였다. 11층이라니? 분명 백화점은 10층까지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세베의 손을 잡고 앞장을 서는 사니와의 얼굴은 무척이나 신이 나보였다. 사니와는 11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시 겉옷을 챙겨 입고,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두르면서도 좀처럼 기분이 좋은 내색을 숨기질 않았다. 하세베는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정말로 엘리베이터의 버튼 중에 ‘11’이라는 숫자가 있었으므로 조용히 따라가기로 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의 은빛 문이 열리고, 찬바람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하세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11층은 건물의 실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옥상을 칭하는 숫자였던 것이다. 옥상에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작지는 않은 나무들이 줄지어 심어진 채 가지를 늘어트렸고 작은 관목으로 그 밑을 장식한 공간이었다. 사이사이에 산책로가 나 있다거나 벤치가 있어서 쉬어가기에 좋아보였고, 중간중간 자리한 조명이 신비롭고 예쁜 분위기를 내었다.
“자, 여기 와서 앉아.”
“주군, 이것은….”
“데이트라고 했잖아?”
둥근 가로등 불빛에 비친 사니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하세베는 사니와의 곁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문 닫을 시간이 되었다는 안내 방송이 울릴 때까지,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