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 파티라는 이름이었지만 크리스마스의 크도 찾아볼 수 없는 연회가 끝나고 시끄러웠던 연회장은 정리하는 사람들만 남아 그 흔적이 하나둘 지워져 간다. 야만바기리 쿠니히로는 술은 거의 마시지도 않았으면서 서 말은 마신 것처럼 헤롱거리는 자신의 주인을 보았다.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으며 자신에게 기대는 주인을 떼어내지도 못하고 앉아서 한숨만 쉬었다. 정리 담당 1번 주명맨 헤시키리 하세베가 압박을 느끼게 하겠다는 것인지 귀신 -어찌 보면 비슷한 존재지만- 같은 얼굴로 그를 보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에게 어떤 방도가 생기는 건 아니다. 정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들었다. 그뿐이다. 하세베가 그를 그렇게 쳐다보는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정리 담당이 분주하게 움직인 덕에 거의 비워진 연회장은 환기를 위해 문을 열어둔 탓에 찬 공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던 보름달은 이제 구름에 가려졌다. 숨을 쉬자 하얀 안개가 나타나고 곧 사라진다. 옆에 앉은 그의 주인은 작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그를 감싸고 있는 천을 만지거나 그의 손을 찔렀다. 손등이 간지러워 금방이라도 웃어버릴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가득 차 있던 술 냄새가 어느 정도 빠지자 하세베는 문을 닫으며 아직도 험악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 시선이 따가워질 즘에 같이 정리를 하던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가 구석에서 잠들어있던 오오쿠리카라의 발목을 잡아끌며 하세베의 옆에 섰다. 아, 이 녀석 취했군. 그와 하세베는 헤실헤실 웃는 미츠타다를 향해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세베는 혀를 차며 오오쿠리카라의 양 손목을 잡아들었다. 미츠타다는 그에 맞춰 양 발목을 잡아든다. 그 순간 그의 옆에서 삐빅 하고 기계음이 들렸다. 그런 것도 알지 못하고 미츠타다는 정체불명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하세베와 함께 오오쿠리카라를 들고 문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사라지자 다시 한 번 삑 소리가 들렸다. 동영상이군. 내일 저것을 회의에서 커다란 화면으로 보게 될 둘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는 고개를 저었다.
"술 깼으면 그만 들어가서 자라."
"아직 안 깼다!"
거짓말, 그렇게 대답하려는데 그녀가 다시 웃음과 함께 팔짱을 끼는 탓에 그는 입만 벌린 채 소리를 내지 못 했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에 그는 그녀가 정말로 취한 상태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세베와 미츠타다가 오오쿠리카라를 끄는 듯 들어 나간 문은 아직도 열려있어서, 찬 공기가 계속 들어오고 있을 터인데 그는 어쩐지 덥다는 느낌을 받았다. 옆에 붙은 술 취한 사람의 체온 탓으로 넘기기엔 자신의 손끝이 뜨겁다. 후드를 벗었다.
"아직도 있었나."
오오쿠리카라의 운반이 끝났는지 돌아온 하세베는 그와 그녀가 아직도 연회장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표정을 구겼다. 그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녀를 보자 하세베는 착잡한 얼굴로 원가 말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가 그대로 한숨만 쉬었다. 손끝으로 이마를 쓸던 하세베는 겨우 말을 꺼냈다.
"계속 여기에 있으면 감기 걸린다."
너 말고 주군이. 그렇게 말하려는 것처럼 하세베의 손가락이 그녀를 향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알아들었을 테지만,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세베는 열린 문을 닫으려다가 말고 그대로 나갔다. 그는 어느새 잠든 그녀를 옮기기 위해 자신이 쓰고 있던 천으로 그녀를 감싸 안아들었다. 문을 닫고 그녀의 방으로 가기 위해 툇마루에 나가자 차가운 것이 그의 얼굴에 닿았다.
이곳에 처음으로 눈이 내렸다.
방금 내리기 시작한 눈은 금세 쌓이기 시작했다. 소매를 걷어 드러난 팔에 결정이 닿아 녹았내렸지만 그는 신경도 쓰지 않고 정
원을 걸었다. 감싼 천 덕에 눈은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떨어지지 않도록, 그러나 갑갑하지 않도록 조금만 힘을 넣어 끌어안았다. 연회장부터 그녀의 방으로 가는 길이 어째선지 길게 느껴졌다. 뜨거운 숨이 새어 나온 입은 금방 찬 공기로 가득 찼다. 추운 것인지 그녀가 움직였다. 그는 발걸음을 더 빨리했다.
그녀의 방은 따뜻했다. 이불 사이에는 전기모포가, 그 근처에는 전기난로가 켜져 있다. 누가 켜두었는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가슴속에서 어떤 감정이 기어올라오는 것을 눌러버리고 그녀를 이불에 눕혔다. 하얀 이불을 목까지 덮고 그는 전기난로를 껐다. 그리고 그대로 일어나 나가려다가 다시 앉았다. 짧은 앞머리를 걷어 드러난 이마에 입을 맞추고 그는 메리 크리스마스, 그 인사를 남기고 밖으로 나가 찬 공기가 들어가기 전에 문을 닫았다.
정원에 남긴 발자국은 밤새 쌓인 눈에 지워졌다.